作词 : Fuuryeye/Maurus 作曲 : Prophit$ [Verse 1] 눈동자에 빛을 잃은 지금의 내 모습, 회피를 해. 스스로도 꼴 사나워. 내가 날 내치는게. 날 모르는 내가 날 찾아다니며 기운 빼. 남을 믿지 못하는건 결국 내가 키운게 돼. 비우게 돼. 잔과 맘을. 어느쪽이 되건간에 난 그게 싫을텐데. 미울텐데.
나 하나를 돌보지도 못하는걸 어찌 남에게 기웃대게 놔둬. 난 날 쉴수없게 죽였어. 함부로 표현 못하게 심해 깊이 묻었어.뻐끔 하고 감정의 기포 방울 꿈틀거렸을 때마다 날 태우고 그 재를 슬픔에 뿌렸어. 굳어져 움츠린 몸에 불을 쬔다 한들 핏기 없는 살같이 더 타들기만 할 뿐. 먼지 가득한 맘엔 세차고 거친 바람뿐. 날 위해 한 곡 뽑아줘. 구성진 가락을.
[Hook] 나 자신을 허락하기엔 난 많은 상처를 남겼어. 누가 누구에게. (바로 내가 내게.) 나 자신을 바보라 말하고 있어. 그런 그 이유 조차도 지금은 생각할 수 없어. 난 그저 내게 너무 큰 실망만이 가득한 이 밤을 보내고 있어.
[Verse 2] 보내고 있어. 허튼 수작으로 하나 둘 다 골내고있어. 초라함에 스스로 현실에서 도태, 또 외면 받는걸 슬슬 즐기면서 날 혼내고 있어. 뭇매란걸 맞으며 피멍이 들고, 아픔에 익숙해진 내게 비명이 줄고, 상처 하나 아무는 날 마다 세워. 기념일들로. 포기하는게 나아. 인간 실격이므로. ‘타협하고 편해지면 되는걸 왜 고생해?’ 되면 나도 하고싶어. 속편하게 공생해가며... 가능하면 부탁할께. 고통과 감정의 숨 모두 단번에 끊어도 되게. 고름, 또 진물 엉킨 암덩어릴 심었어. 매 순간 하나하나가 이 더러움을 키웠어. 나 홀로 조용히 간절하게 빌고 빌었던 ‘행복’ 이란 글자가 내 역사에서 지워져.
[Verse 3] 비릿한 악취가 나는 느낌이 와. 풀 한 포기조차 썩는 곳이 나의 길이야. 몸도 맘도 쉬이 눕지 못할 정도의 희미함. 잊혀질지 몰라. 내 존재의 의미가.비릿한 악취가 나는 느낌이 와. 풀 한 포기조차 썩는 곳이 나의 길이야. 딱 하나 남긴 희망만이 나 사는 빌미야. 이런게 스스로에게 양보받은 신의야.
作词 : Fuuryeye/Maurus 作曲 : Prophit$ [Verse 1] 눈동자에 빛을 잃은 지금의 내 모습, 회피를 해. 스스로도 꼴 사나워. 내가 날 내치는게. 날 모르는 내가 날 찾아다니며 기운 빼. 남을 믿지 못하는건 결국 내가 키운게 돼. 비우게 돼. 잔과 맘을. 어느쪽이 되건간에 난 그게 싫을텐데. 미울텐데.
나 하나를 돌보지도 못하는걸 어찌 남에게 기웃대게 놔둬. 난 날 쉴수없게 죽였어. 함부로 표현 못하게 심해 깊이 묻었어.뻐끔 하고 감정의 기포 방울 꿈틀거렸을 때마다 날 태우고 그 재를 슬픔에 뿌렸어. 굳어져 움츠린 몸에 불을 쬔다 한들 핏기 없는 살같이 더 타들기만 할 뿐. 먼지 가득한 맘엔 세차고 거친 바람뿐. 날 위해 한 곡 뽑아줘. 구성진 가락을.
[Hook] 나 자신을 허락하기엔 난 많은 상처를 남겼어. 누가 누구에게. (바로 내가 내게.) 나 자신을 바보라 말하고 있어. 그런 그 이유 조차도 지금은 생각할 수 없어. 난 그저 내게 너무 큰 실망만이 가득한 이 밤을 보내고 있어.
[Verse 2] 보내고 있어. 허튼 수작으로 하나 둘 다 골내고있어. 초라함에 스스로 현실에서 도태, 또 외면 받는걸 슬슬 즐기면서 날 혼내고 있어. 뭇매란걸 맞으며 피멍이 들고, 아픔에 익숙해진 내게 비명이 줄고, 상처 하나 아무는 날 마다 세워. 기념일들로. 포기하는게 나아. 인간 실격이므로. ‘타협하고 편해지면 되는걸 왜 고생해?’ 되면 나도 하고싶어. 속편하게 공생해가며... 가능하면 부탁할께. 고통과 감정의 숨 모두 단번에 끊어도 되게. 고름, 또 진물 엉킨 암덩어릴 심었어. 매 순간 하나하나가 이 더러움을 키웠어. 나 홀로 조용히 간절하게 빌고 빌었던 ‘행복’ 이란 글자가 내 역사에서 지워져.
[Verse 3] 비릿한 악취가 나는 느낌이 와. 풀 한 포기조차 썩는 곳이 나의 길이야. 몸도 맘도 쉬이 눕지 못할 정도의 희미함. 잊혀질지 몰라. 내 존재의 의미가.비릿한 악취가 나는 느낌이 와. 풀 한 포기조차 썩는 곳이 나의 길이야. 딱 하나 남긴 희망만이 나 사는 빌미야. 이런게 스스로에게 양보받은 신의야.